자살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은 그저 남의 일로 보아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졌다.
 생활고와 카드 빚에 떠밀려 가족과 함께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사람들로부터 누가 봐도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재벌회장에 이르기까지 자살을 결행한 사람들의 범위도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보면 1년동안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80만명이 자살을 하고, 2002년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36명, 1년 동안 13.000명 이상이 자살로 숨졌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부터 벌써 세계2위의 자살율을 보이고 있으며 90년대 들어선 이후에는 자살률이 두배 이상 증가한 자살 위험국가이다.
 그렇다면 자살을 하게되는 이유나 배경은 무었일까?
 에밀 뒤르껭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자살의 유형을 나누었고 프로이드를 비롯한 정신분석학자들은 마음속의 공격성과 죄의식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파악했다. 물론 현실적인 고통, 다시 말해 경제적 곤란이나 실연, 가족의 죽음 등이 자살과 깊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요즘은 자살자의 성격이나 심리구조보다는 그 사람이 자살에 대해 어떤 공상을 했고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는지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다. 예를 들어 실연을 당했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면 자살을 함으로써 상처를 준 대상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성취욕이 강한 사람은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응징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기도 하며 최근에 가족과 사별한 사람은 가족과 다시 만나기 위해 따라 죽을 수도 있다. 
 이러한 자살자들의 생각은 다소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으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강한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결국, 자살을 실행하기 전에 자살에 대한 그릇된 믿음을 바로잡는다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살할 것이라는 신호를 미리 보내게 되고 많은 경우에, 꼭 자살하겠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직, 간접적으로 자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 피상적인 위로로 넘어가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자살과 연관된 여러 가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물어본 다음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유도해야 한다.
 왜 죽겠다는 것인지, 어떻게 죽을 것인가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는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준비를 했는지, 혹시 유서를 쓰지는 않았는지... 가능하면 세세한 사항까지 물어봐야 하고 이때 자살을 계획하던 사람은 진정한 관심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살을 시도할 당시에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으며 급성 스트레스성 장애, 우울증과 조울증, 사고로 인한 성격변화, 심한 불안장애, 정신분열병 등의 질환이 그 예다.
 그 중에서도 우울증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인데 우울증의 경과 중에서도 회복기에 자살 시도가 더 많다는 점, 그리고 심한 우울증이 아니라도 기분부전장애처럼 심하지 않은 우울감이 장기간 지속될 때도 자살의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겠다.  

 나이에 따라 자살의 동기도 다를수 밖에 없다. 청소년들은 성인에 비해 충동성이 강하고 커다란 변화가 계속되는 시기인데다가 과거에 비해 계층간 격차, 학교와 학원에서 교우관계, 성적의 압박 등 스트레스가 심하다.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잘 안되면 리셋(reset)단추를 눌러버리는 것처럼 인생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쉽게 가질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그만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삶과 죽음, 성적 이외의 가치들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와 가정의 주축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노인들에게는 이제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제일 괴로운 것이다. 60세 이후 자살률이 가장 높고 집안일에서 자기의 영역을 갖고 있는 여자에 비해 남자의 자살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일상생활에서 어르신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진심으로 예우하는 것부터 실천했으면 좋겠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괴로운 일을 겪게될 것이고 그런 시기에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 처음에는 단순히 머리가 아프고 잠이 안와서 병원을 방문했다던 사람들도 상담을 하다보면 눈물을 흘리며 힘든 이야기를 쏟아내는 경우가 아주 많다. 환자의 호소를 의사가 잘 이해하면 환자의 긴장이 풀리고 억눌렸던 감정이 복받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혹은 스스로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고 외면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힘들고 괴로운 것을 인정하는 일이 자존심을 조금 상하게 하더라도 그때부터는 새로운 힘을 얻을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나의 짐을 조금 덜어 가게 하는 것도 때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누구나 인정하듯이 힘든 세상살이이고 그 세상 속에서 힘들어하는 서로의 감정에 보다 진지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