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라고 하면 얼른 술이 떠오른다. 외국의 진단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20% 이상이 알코올 중독자로 진단이 된다. 우리사회에서 술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좀 더 심각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약중독이 있다. 듣기만 해도 오싹한 느낌이 든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일부 계층에만 국한되었던 마약이 이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 지금은 다소 줄긴 했지만 한때 우리 청소년들의 정신세계를 황폐화 시켰던 본드나 부탄가스 중독, 이런 약물중독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실정이다. 술, 마약, 그리고 약물, 이것들을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떤 물질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작용하고 이로 인해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요즘 우리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도박중독, 인터넷중독, 쇼핑중독, 여기에는 엄연히 중독이라는 말이 붙어있다. 사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질병은 중독이 아니라 충동조절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연구에 의하면 원인이나 임상적인 양상, 병의 경과, 결과가 술이나 마약중독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들을 일종의 행위중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마라톤이나 섹스를 비롯한 쾌락을 주는 행위에 몰두하는 모든 현상에 중독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마치 세상에는 중독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들린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말한다면 술을 많이 마신다고 꼭 중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물건을 많이 산다고 꼭 쇼핑중독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를 많이 한다고 인터넷 중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모든 중독에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 첫째가 바로 내성이다. 같은 흥분을 얻기 위해서는 양이 점점 늘어나야 한다. 술꾼은 음주량이 시간이 갈수록 늘고 도박꾼은 판돈이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또 한가지 무서운 증상이 금단증상이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어느 순간 자신에게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가정과 직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일시적으로는 스스로 절제하려는 결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노력은 금단증상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로 끝난다. 술꾼이 술을 멀리하면 초조하고 불안하고 안절부절이다. 눈빛부터 달라지고 집중력도 완전히 사라진다. 마약은 말할 것도 없고 도박이나 인터넷 중독자에게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 단계가 되면 안하고 싶어도 의지대로 쉽게 되지가 않는다. 잠시는 의지로 조절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몇 달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내성과 금단증상이 있고 심각한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면 심각한 중독상태에 있는 것으로 진단할 수 있다.     
각종 중독은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가정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왜 이런 심각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는 것일까? 왜 똑같이 술을 마시는데, 똑같이 도박을 하는데 누구는 중독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정답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심리적인 요인, 환경적인 요인, 성격과 타고나는 요인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가지 연구들은 중독이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질병임을 밝혀주고 있다. 알코올 중독뿐 아니라 약물, 마약중독과 일종의 현대병이라고 할 수 있는 도박, 쇼핑, 사이버 중독 등이 모두 같은 원인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쾌락, 충동과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인간의 뇌에는 충동을 담당하는 회로가 있다. 이 회로가 선천적으로 부실하거나 어릴때부터 잘못 형성된 경우 쉽게 중독에 빠진다는 설명이다. 이 사람이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 도박을 하면 도박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다. 쾌락을 담당하는 뇌는 특정한 자극이 들어오면 다량의 쾌락물질을 분비하고 다시 더 강력한 자극을 찾게되는 것이다. 이 회로에는 도파민을 비롯한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작용하는데 너무 많거나 적거나 불균형을 이루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도박중독은 더 이상 마음이나 의지의 병이 아닌 뇌의 병, 즉 일종의 뇌기능 장애인 셈이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중독의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성격적인 요인도 있다. 임상에서는 크게 두 부류의 중독자들을 만나게 된다. 첫째는 스릴을 추구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들은 뭔가 새로운 자극, 좀 더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탐닉형 환자들이다. 이들은 성격적으로 여러가지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또 한 종류의 중독자들은 현실도피적인 사람들이다. 대개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대개 세상 재미를 모르고 친구도 별로 없고 사회활동도 취미도 거의 없다. 이런 사람에게 술이나 마약, 도박 등은 일시적인 항우울제라고 할 수 있고 일시적인 도피처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효과는 잠시 뿐, 더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이 엄습하는 것이다.                   
  물론 중독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술이나 도박, 인터넷 중독 등이 유독 우리나라에 많은 것일까? 알코올 중독은 물론이고 도박이나 인터넷 중독자의 비율도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사회의 어떤 면이 수많은 사람들을 중독자로 만드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그 사회의 중독자 비율은 그 사회가 중독에 대해 얼마나 허용적인가, 얼마나 쉽게 중독물질이나 행위를 접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처럼 술에 허용적인 나라도 드물다. 허용적인 정도가 아니라 폭탄주라도 못 마시면 남자 취급도 안하는 희안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도박은 어떤가? 내국인을 위한 카지노가 생기고 경마, 경륜 등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최근에는 복권 열풍이 불고 인터넷 복권도 엄청난 판매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합법적 도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시내 곳곳에 불법 도박장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한해동안 검거된 도박사범만도 무려 3만 4천명이나 되고 외국의 카지노에선 특별 대우를 받는 한국인이 수도 없이 많다. 지금도 정부와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도박산업을 유치하고 있다. 이런 형편이니 중독자가 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독은 치료가 안 된다거나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술꾼은 의지박약자로 몰려 구박을 받기 일쑤고 마약이나 도박중독자는 성격파탄자의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더 이상 중독현상을 단순히 개인 의지의 문제로 몰아 부쳐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치료에 희망이 없다. 손가락을 자르고 다음날 또 하는 것이 도박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는 것이 마약이다. 우리가 중독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 이미 본인 의지의 한계를 넘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제대로 된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지만 각종 중독성 질환은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중독의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인격적으로도 황폐화가 일어나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거의 자포자기 상태다. 이런 경우 치료가 되어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조기치료를 위해서는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족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독으로 인해 회사생활이나 가정생활에 문제가 일어날 정도면 가족들이 이걸 병으로 인식해야 된다. 중독자의 뒤에는 늘 희생적인 가족들이 있다. 큰 일이 터지면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하는 심정으로 만사를 제치고 해결해 주는 것이 가족이다. 이런 행동은 결국 중독자를 만성화로 몰아가는 지름길이다. 이젠 사랑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쾌락 뒤에 숨은 그들의 허탈감, 후회, 우울, 수치심과 분노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중독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함을 보이는 절제된 사랑이 필요하다. 따뜻하지만 냉정한 사랑, 이것이 그들을 무서운 중독 세상에서 탈출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신영철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